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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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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어르신과의 교감(홍나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3-02
조회 50660

치매 어르신과의 교감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나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라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영어사전 상 라포(rapport)’관계; 협조; 일치를 뜻한다. 의학에서는 환자와 의사 사이의 치료적 관계를 뜻하며, 친밀감과 신뢰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망상과 환각이 가득한 환자들과 라포를 맺는 것은 정신건강의학과에 막 입문하는 전공의들에게 처음 주어지는 지상 과제이다. 의사가 독을 주어 자신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환자들과 라포를 맺는 것은 정신건강의학에 입문하는 전공의들에게 말도 안 되게 어려운 과제이다.

노인정신의학 전문의로서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치매 환자와는 관계를 맺는 것이 잘 안 되니 보호자만 주로 보겠어요?’이다. 실제로 돌봄과 관련하여 보호자 면담을 길게 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치매 환자 치료에 있어서 보호자와의 라포는 매우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치매 환자라고 해서 주치의와 라포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물론 치매가 깊어지게 되면 주치의는 고사하고 평생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던 자식들도 못 알아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전까지 주치의에게 수도 없이 눈물 날 만큼 감동적인 순간을 주시는 분들이 치매 어르신들이다. 수개월 만에 만나게 된 상황에서도 몇 년 전 주치의가 임신했던 것을 기억하고 애들은 잘 크고 있는지 챙겨 주시기도 하고, 집에서 드시던 간식을 우리 선생님 줘야 한다며 주머니에 꼬옥 넣어가지고 오셔서 몰래 건네 주시며 꼭 선생님 혼자 먹어요, 비싼거야라며 속삭이고 가시기도 하고, 오늘 주황색 스웨터가 잘 어울려서 훨씬 젊어 보인다며 앞으로 지난번처럼 거무죽죽한 거 입지 말고 밝은 거 입으라고 패션 정보를 주시고 가시기도 한다. 가끔 이런 모습에 가족들이 놀라기도 한다. 당연히 기억 못하실 거라고 생각하고 병원 가요하고 별 설명 없이 모시고 왔는데 주치의까지 챙기는 모습을 신기하게 여기는 것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의 머리 속 어딘가에 내가 남아 있다는 것은 정말 감동적인 일이다.

 

치매 어르신이라고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 아니듯, 다른 사람들, 특히 자신을 돌보는 사람들과 교감을 못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떨 때는 머리로는 누군지 잘 모르시면서 아주머니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하고 그냥 좋은 감정만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어르신들이 내가 누군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나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경험이다. 정말 나에 대한 아무런 편견 없이 그냥 내가 좋다는 것 아닌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치매 어르신과 같이 지낸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이렇게 반짝이는 순간을 느낄 수도 있다. 비록 그 반짝임이 찰나일지라도 우리는 그 반짝임을 놓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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